나는 나를 구성하는 감각과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회화를 통해 탐색해왔다. 초기 작업인 〈주관적인 풍경〉은 이러한 질문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나는 타인의 기대와 외부의 질서에 부합하려 애쓰며 자아를 의식했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가져오는 고통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든 분리해내려는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그 분리의 끝은 오히려 목적의 상실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정처없이 부유하게 되었다.

이 작업은 바로 그 불안정한 자아를, 경험을 통해 다시 구성하고자 한 시도였다. 나는 나의 기억과 밀접한 장소, 일상에서 만난 풍경, 짧은 여행지의 단편, 상호작용 등을 채집했다. 그리고 그것들과 맺은 감각적 관계를 하나의 화면 안에 병치시키고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구성했다.

내가 그리는 풍경은 실제 존재하는 하나의 장면이 아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집한 형상과 감각들이 한 화면 위에서 겹쳐지며 구성된다. 반복되는 건물, 뒤엉킨 구조, 원근법에서 어긋난 거리감은 모두 세계가 나에게 어떻게 경험되었는지를 시각화한 것이다. 수묵은 이 인식의 불완전함과 유동성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매체였다. 번짐과 스밈, 명암의 층위는 감정과 감각의 흐릿한 경계를 포착한다.

이 작업은 나에게 하나의 증거다. 내가 어떤 시간과 공간에 실재했었고, 그로부터 형상된 세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기록. 동시에, 그것은 내가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구조이기도 하다. 나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 의미를 만들어냈고, 비로소 고통은 감내 가능한 것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이후 나의 회화가 타인의 경험과 교차하며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출발에는 언제나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자 했던,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감각의 구조에 대한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작업 초기부터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관심을 가져왔다. 나의 정신은 기억을 통해 형성되고, 기억은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내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나는 존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풍경, 즉 인식과 감각이 구성한 세계를 회화적으로 탐색해왔다. 이러한 풍경은 결국 나의 형태를 구성하는 감각적 구조이며, 나아가 우리의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겹쳐지고 흐릿하게 맞물려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사유하는 장치가 된다.